-희대의 살인마 노남용
“누군가가 게임을 시작하면 나는 즐길 수밖에 없어. 중독돼. 못 그만둬. 그러니 애초에 나하고 게임을 하지 않아야 해. 시작 자체를 하면 안 되는 거라고.”
-노남용을 교도소로 돌려놓으려 치밀하게 계획한 사내.
“남용아, 복귀해야지. 형벌과 눈물이 있는 테마파크로. 너 같은 새끼들이 잔뜩 있는데 그놈들마저 너를 경멸하는 곳으로.”
-어느 특별한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 노남용을 죽여야만 하는 사내.
‘이놈밖에 없다. 무조건 이 새끼다. 여자들 강간하고 얼굴에 칼자국 그은 놈. 아직 꼬마인 어린애 자살하게 만든 버러지 새끼. 출소가 머지않은 최악의 범죄자. 노남용이 내 타깃이야.’
-약물과 가스로 491명을 안락사 시킨 선생님이라 불리는 사내
“고통 없는 죽음이 허락되지 않는 건 단 두 가지 경우뿐이네, 져야 할 책임과 치러야 할 대가가 아직 남았을 때지.”
* 출소까지 21일, 희대의 살인마가 사회로 풀려난다
여기 전 국민이 다 아는 범죄계의 슈퍼스타가 있다. 노남용. 지금은 살인과 강간 등으로 교도소에 갇혀 있다. 그러나 좋은 배경과 막대한 재산으로 지은 죄에 비해 모자라는 형벌을 받아 곧 출소를 앞두고 있다. 그런 노남용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자유를 잃는 것이다.
소설은 노남용을 다시 교도소로 돌려보내기 위해 치밀한 덫을 짜는 사내와 어느 특별한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 노남용을 죽여야 하는 사내, 그리고 약물과 가스로 419명을 안락사 시키는 사내까지, 세 개의 시점을 번갈아 등장시키며 하나의 사건을 향해 맹렬히 달려가는 이야기로 숨 쉴 틈 없이 전개된다.
* 하얀 가면의 사내가 묻는다. “네 죄를 말해.”
이 소설은 사냥꾼이라 불리는 사내의 이야기가 메인 스토리다. 그는 보호를 전문으로 하는 특별한 회사에 다니고 있다. 진정한 보호를 위해 가해자의 제거까지도 하는 아주 특별한 회사다. 사냥꾼은 회사의 에이스로 공포를 특기로 한다. 그는 사회로부터(혹은 노남용으로부터)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노남용에게 접근해 덫을 놓는다. 이 대목에서 주목할 것은 그가 의뢰인에게 받는 의뢰들이다. 학교폭력으로 장애인이 된 학생의 아버지, 친족 성폭행을 당한 딸 등등은 우리 사회 어디선가 본 듯한 광경이지 않은가. 의뢰인들은 ‘제대로 된 형벌이 없는 사회에서 우리는 과연 우리를 지킬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 그렇기에 의뢰인은 사냥꾼에게 의뢰를 하는 것이고, 사냥꾼은 작업모 같은 하얀 가면을 쓰고 우리에게 묻고 또 묻는 것이다.
“네가 지은 죄를 말해.”
* 날것의 힘을 보여주는 작가 반시연
『흐리거나 비 아니면 호우』시리즈로 독자들에게 호평을 받은 반시연 작가는 어느 누구와도 비교가 불가능한 스타일리스트다. 비속어가 난무하는 와중에도 그의 문장은 유려하며, 폭력이 난무하는 와중에도 정제되어 있다. 긴장감이 넘치는 장면에서 그의 문장은 바닥에 숨죽이고 있으며, 통쾌함을 줄 때는 랩처럼 리드미컬하다.
반시연의 소설 속 배경과 소재는 항상 날것이다. 말하자면 우리네 뒷골목이나 그 언저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살인과 폭력, 강간, 꽃뱀, 성소수자 등등. 그래서 강렬한 뒷맛을 남기기도 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현실에 발을 담그고 있으니 또한 씁쓸하기도 하다.이번 신작 『무저갱』은 그동안 보여 왔던 반시연의 세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까지 보여준 세계의 총집합이자 최고점이며, 앞으로 나아갈 방향의 변곡점을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 줄거리
그 무엇에도 재능과 소질이 없어 악덕업주의 음식점에서 야간삼촌으로 일하던 ‘나’는 어느 날 마약에 취해 시비를 거는 손님과 맞닥뜨리게 된다. 손님의 허리춤에 식칼이 꽂힌 것을 본 나는 어떻게든 비위를 맞추려고 하지만 결국 패닉 상태에서 손님을 밀치고 만다. 그 순간 폭력의 재능을 발견한 ‘나’는 식칼을 주워 기쁘게 손님을 찌른다.
올해 마흔셋인 ‘나’는 차장 직급의 회사원이다. 비싼 아파트에 살며 고급 자동차를 몬다. 모두가 완벽한 ‘나’의 생활을 부러워한다. 그러나 부하직원은 말썽이고 상사는 분노하는 게 현실이다. 사실 회사는 고객의 완벽한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곳이다. 그곳의 능숙하고 노련한 에이스가 바로 ‘나’다. 하얀 가면을 쓰고 의뢰인이 부탁한 자들에게 묻는다. “네가 지은 죄를 말해.”
한때 의사였고 또 한때 박사였던 ‘나’는 노인이다. 은퇴한 ‘나’는 검은 양복에 검은 코트를 입고 희망자를 찾아가 고통 없이 죽여준다. 안락사를 바라는 사람은 갈수록 늘어나는 실정이다. ‘나’는 오늘도 의뢰인을 찾아 고통 없는 죽음을 선사한다. 죽음은 이 부조리한 세상에서 나가는 문이므로.
노남용을 교도소로 다시 돌려놓으려 치밀하게 계획한 사내. 어느 특별한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 노남용을 죽여야만 하는 사내. 약물과 가스로 491명을 안락사 시킨 선생님이라 불리는 사내. 노남용을 둘러싸고 ‘나’라는 세 개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이야기가 하나의 사건을 향해 맹렬히 돌아가기 시작하는데…….
■■■ 본문 속으로
남자가 놓친 칼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세면대 아래의 소변 흥건한 자리에 놓여있었다. 칼, 내 칼. 남자가 꿈틀거리며 자루를 쥐려 했다. 거대한 애벌레 같은 몸짓이었다. 내가 먼저 잡아야 해. 문득 떠오른 생각에 움찔했다. 잡아서, 그 뒤에는? 얼굴이 착잡했다. 옷도 시뻘겋게 젖었다. 남자가 나자빠질 때 튄 핏물을 뒤집어 쓴 탓이었다. 나는 거울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내가 여태껏 알던 내가 아니라…… 낯선 표정을 한, 이질적인 분위기의 생물이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맞는 일을 찾은 듯한, 그런 것.
_ 본문 중에서
나의 스트레스는 노남용에게서 왔다.
그로 인한 위염과 불면증도, 지긋지긋한 환청도.
노남용은 이 나라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슈퍼스타였다. 매국노의 후손, 부자, 빵빵한 집안, 성범죄자, 전과자, 폭력배, 새디스트 겸 마조히스트 등 국민들이 좋아서 환장할 요소들을 골고루 갖춘 인간이었다. 사람들은 그가 가진 치명적인 매력 중에서도 성범죄자의 면모에 특히 주목했다.
_ 본문 중에서
방귀 깨나 뀌어본, 어지간히 놀았다는 인간들도 노남용에게는 먹잇감일 뿐이다. 애초에 인간은 괴물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그리고 짐승도 괴물을 상대할 수는 없다. 괴물을 상대하는 건 언제나 괴물이다. 만약 인간이나 짐승이 괴물을 이겼다면, 실은 인간도 짐승도 아니었던 것이므로 결국은 괴물이 된다.
그러므로 나도.
“괴물이 되어야겠지.”
_ 본문 중에서
노남용은 나의 타깃이다.
놈은 충분한 벌을 받지 못했다. 짙은 죄의 역사에서 단 한 번도 그랬던 적이 없다. 배경을 이용하여 언제나 강물에 발톱 끝만 살짝 적셨을 뿐이었다. 마치 남의 일인 양 멀찍이 떨어져 불행을 구경했다. 그래서는 안 되었다. 대가를 치러야 했다. (중략) 자신에게 갇혀 자신에게 몸부림을 치다가 자신을 굴러 자신에게 온몸을 긁혀야 한다. 놈이 곧 놈의 지옥이 되어 독기만 감도는 골짜기에서 닿지 않는 언어와 눈먼 몸짓만을 쥐어짜내야 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피해자들이 울었던 것처럼 끝없이 허덕이다 메말라가야 할 터였다.
“출소까지 21일.”
부디 고통을 안겨주십시오.
환청이 수시로 목청을 높였다.
_ 본문 중에서
“타깃을 고르는 것부터가 현장부서 테스트의 시작입니다. 시시한 대상 따위는 들이밀 생각도 마십시오. 우리 회사에 걸맞은, 부끄럽지 않은 목표를 설정하여 계약금의 나머지를 받아내는 겁니다.”
그러니 이제. 남자가 물었다. 누구를 불태워서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주시겠습니까?
“노남용.”
“호오.”
“노남용. 그래. 노남용.”
저절로 이름이 튀어나갔다.
_ 본문 중에서
“나는 괴물이 아니야. 가끔 괴물로 변할 뿐이지.”
“그런 걸 보고 그냥 괴물이라고 하는 겁니다. 보통 사람은 그 어떤 때에도 괴물로 변하지 않거든요.”
“나는 그 ‘보통 사람’들이 벌이는 악랄한 짓을 수도 없이 보았네. 요즘은 조직폭력배보다 일반인이 더 양아치 짓을 하는 세상이야. 자네도 수없이 목격했을 텐데.”
“맞습니다. 그것들도 모조리 괴물이죠.”
_ 본문 중에서
■■■ 저자 소개
반시연
소설가. 1983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다른 작품으로는 <사가>, <우울한 저녁의 괴들>, <습도 8페이지>, <유령의 노래>, <흐리거나 비 아니면 호우> 시리즈가 있다.
■■■ 추천의 글
“그는 한국 스릴러 작가 중 가장 독특한 영역을 선점했다.”
-편집자
“마지막 장을 읽는 순간, 덫에 빠진 것은 노남용이 아니라 바로 ‘나’라는 사실에 압도당했습니다.”
-정은정(독자)
“‘네 죄를 말해.’ 완독하고도 한동안 환청처럼 하얀 가면의 대사가 귀를 맴돌았습니다.”
-손유진(독자)
■■■ 목차
프롤로그
고동
지평선
조우
아스팔트
구멍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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